2026년, 전력망에서 시작된 원인불명의 이상이 연쇄 재난으로 번졌다. 도시를 지탱하던 기반이 차례로 멎었고, 기존 문명은 무너졌다.
전력망이 왜 첫 진원지가 되었는지는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 생존자들은 그날의 재앙을 오버로드라고 불렀다.
폐허가 미처 수습되기도 전에, 일부 인간에게 이전에는 없던 능력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오버로드 이후 능력이 나타난 인간을 발현자라 부른다. 잠재 반응만 보이는 단계부터 완전히 능력을 다루는 단계까지 발현 정도는 제각각이지만, 확인되는 순간 관리국의 등록 대상이 된다. 능력의 제어와 판단, 누적된 성과와 공식 평가를 바탕으로 C부터 S까지 등급이 매겨지며, 통상 기준을 벗어난 극소수만 SS로 분류된다.
발현자는 두 타입으로 나뉜다. 센티넬은 고유 능력을 직접 쓰고, 가이드는 센티넬에게 쌓인 과부하를 접촉으로 분산·흡수해 안정시킨다. 공식 기록과 일상 모두 이 두 명칭을 쓴다.
등급표에 존엄을 적는 칸은 없다. 그런데도 세이블시티의 문은 등급에 따라 다른 순서로 열린다. 정보와 장비, 발언권과 구조 순서가 달라지고, 실적으로 더 높은 자리에 오를수록 포섭과 책임도 가까이 따라붙는다.
신경 임플란트와 의체, 보조 장비는 능력 운용을 돕고 신체 상태를 읽는다. 정밀도와 출력을 끌어올릴 수는 있어도 센티넬의 신경에 쌓인 값을 대신 치러 주지는 않는다.
누적 과부하는 기술만으로 사라지지 않고, 폭주 역시 장치 하나로 멈출 수 없다. 불법 개조로 얻은 힘에는 신경 손상과 장치 의존, 원격 통제와 데이터 유출이 뒤따른다. 더 강해진 몸이 더 자유로운 몸이라는 보장은 없다.
센티넬은 능력으로 전투·구조·추적·침투를 수행하는 발현자다. 관리국 소속 센티넬은 현장특수대응부에서 폭주 사고와 발현 범죄를 제압하고, 시냅스 액손과 무소속 센티넬은 계약과 생존을 따라 같은 현장에 들어온다.
능력을 사용할수록 신경계에 과부하가 쌓인다. 초기에는 두통이나 감각 이상, 기억 혼선이 나타나지만 상태가 악화되면 능력을 스스로 멈추지 못하는 폭주 단계로 넘어간다. 이때 제압과 가이딩에 성공하면 돌아올 수 있다. 멈추지 못한 센티넬은 과부하로 사망하거나 붕괴한다.
가이드는 신체 접촉을 통해 센티넬의 과부하를 분산·흡수한다. 서로의 신경 반응을 맞물려 안정을 되찾는 이 과정을 가이딩이라 부른다.
접촉이 넓고 깊을수록 안정은 빨라지지만, 가이드가 떠안는 부하와 감각 과민도 커진다. 때로 성적인 생리 반응이 섞일 수 있으나 언제나 나타나는 것은 아니며, 몸의 반응만으로 마음이나 동의를 대신할 수는 없다.
가이딩은 생존 수단인 동시에 관계를 바꾸는 사건이다. 누가 몸에 닿을 권리를 얻는지, 위급할 때 동의가 어디까지 유예되는지, 반복된 의존이 보호인지 소유인지가 개인과 세력 사이의 갈등으로 남는다.
관리국은 등급과 수용 능력, 현장 상황에 따라 가이드를 배정한다. 시냅스는 적합도와 데이터 가치를 계약으로 묶는다. 어느 쪽의 보호망에도 들지 못한 이들은 언더시티에서 비공식 가이딩을 구한다.
받아낼 수 있는 양에는 한계가 있다. 한계에 닿으면 탈진하거나 의식을 잃고 일시적으로 능력이 떨어질 수 있지만, 충분히 쉬고 치료받으면 대부분 회복한다. 다만 수용 능력을 강제로 넘는 가이딩이 반복되면 영구 손상이 남고 아주 드물게 붕괴한다. 부하를 받아냈다는 이유만으로 가이드가 폭주하는 것은 아니다.
상설 조직과 사건별 현장팀은 다르다. 관리국 현장특수대응부와 시냅스 액손은 인력을 보유하지만, 실제 현장팀은 경보·계약·의뢰마다 필요한 인원으로 편성된다.
세이블시티의 현장에는 폭주 신고와 불법 임플란트 사고, 미등록자 회수와 호송, 계약 이탈, 비공식 가이딩과 신경 데이터 거래, 기업 실험과 탈취가 얽힌다. 같은 사람을 관리국은 위험 인원으로, 시냅스는 보호하거나 되찾아야 할 자산으로, 언더시티는 숨겨야 할 이웃이나 값이 붙은 의뢰로 본다.
폭주는 제압과 가이딩으로 되돌릴 수 있는 마지막 단계다. 현장에서 멈추지 못한 센티넬은 과부하로 사망하거나 붕괴하며, 붕괴가 시작된 개체는 구조 대상에서 제거 대상으로 전환된다.
붕괴자는 능력이 육체를 잠식해 골격과 장기, 피부가 기형적으로 변한 잔존 개체다. 기억과 언어도 대부분 끊기며 인간의 외형과 판단을 유지하지 못한다. 더는 사람이라 부르기 어려운 형상만 현장에 남는다.
붕괴자와 괴이종은 데드존에서나 드물게 마주치는 위협이다. 세이블시티의 모든 사건을 괴물 사냥으로 바꾸는 흔한 적은 아니다.
그들이 출현하면 기존 목표는 흔들린다. 진입을 계속할지, 사람과 물증을 먼저 회수할지, 살아서 철수할지를 두고 현장팀과 세력의 이해가 갈라진다.
같은 도시에서도 감시의 밀도와 살아남는 방식은 구역마다 다르다.
기업과 상류층이 모인 도시의 중심부. 정비된 거리와 빠른 대응망을 누릴 수 있지만 이동과 신원, 발현 반응은 촘촘한 감시 아래 놓인다.
안전은 가장 가까이에 있고 익명성은 가장 멀리 있다. 관리국과 시냅스의 권력이 일상적인 표정으로 드러나는 구역이다.
감시망의 틈마다 암시장과 픽서, 비공식 가이딩이 자리 잡은 하층 구역. 등록되지 않은 사람과 거래가 흔적을 감추기 위해 흘러든다.
선택지는 많지만 누구도 결과를 보증하지 않는다. 치료와 개조, 은신과 거래는 언제든 새로운 빚이 될 수 있다.
오버로드 이후에도 복구되지 않은 도시 밖의 황무지. 관리국의 추적과 시냅스의 보호망 모두 오래 버티지 못한다.
무소속 헌터와 미등록자가 스스로 길을 만들고, 붕괴자와 괴이종이 드물게 모습을 드러낸다. 구조와 치료, 가이딩은 약속되지 않는다.
관리국은 발현자의 이름과 능력을 기록하고, 가이딩과 현장 배치를 조정하며, 위험이 현실이 된 순간에는 제압과 수용까지 집행한다. 개인의 힘이 도시의 피해로 번질 수 있다는 사실이 모든 개입의 근거가 된다.
보호망 안에서도 자리는 같지 않다. 등급과 위험도, 축적된 실적에 따라 열람할 정보와 지급 장비, 배치와 지휘권이 달라지고 위급한 순간 누구를 먼저 꺼낼지도 달라진다. 사고를 줄이는 질서는 분명 존재하지만, 그 질서가 선택권을 대신 결정하기도 한다.
현장특수대응부는 경보가 울린 곳에 필요한 센티넬과 가이드, 지원 인력을 보낸다. 폭주 진압과 미등록자 확보, 발현 범죄와 구조가 한 현장에서 겹칠수록 공공안전이라는 말의 범위도 넓어진다.
치료와 임플란트, 보호망을 가진 바이오·의료 기업. 관리국의 등록표 대신 계약서를 내밀며, 그 안에 신체 기록과 능력·가이딩 데이터의 권리를 함께 적는다.
시냅스가 보는 값은 등급 하나로 끝나지 않는다. 희소성과 적합도, 데이터 가치와 통제 비용까지 저울에 올라간다. 낮은 등급도 필요한 데이터가 있다면 좋은 조건을 얻고, 강한 발현자도 감당할 비용이 크다면 경계받는다. 살아남게 해 주는 손이 몸의 기록까지 가져갈 수 있다.
시냅스의 계약과 자산, 데이터를 현장에서 지키는 조직. 구조와 호송, 시설 방어와 회수, 계약 이탈자 추적이 액손의 일이 된다.
관리국 현장특수대응부가 도시의 안전을 앞세운다면 액손은 시냅스가 약속한 보호와 계약을 앞세운다. 같은 사람을 구하고도 누구에게 데려갈지를 두고 충돌할 수 있다. 구조는 때때로 포섭의 첫 단계가 된다.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은 이들을 묶어 부르는 총칭. 미등록 센티넬과 가이드, 픽서와 헌터가 필요할 때 연결될 뿐 하나의 조직이나 지휘부는 없다. 신분증 대신 실적과 평판, 현상금과 지킨 약속이 다음 거래의 무게를 정한다.
누구의 명령도 받지 않을 수 있다는 점에서 가장 자유롭지만, 다쳤을 때 부를 구조대도 가이딩도 보장되지 않는다. 불법 개조와 암시장 진료는 오늘을 넘기게 해도 내일의 신경과 빚을 담보로 잡는다. 감시 밖 삶의 반대편에는 빈곤과 방치가 놓여 있다.
관리국에 들어가면 위험한 순간 돌아올 길이 생기지만 등록과 배정을 거스를 여지는 줄어든다. 시냅스와 손잡으면 다른 생존 수단을 얻는 대신 몸과 기록이 계약의 문장이 된다. 어느 쪽도 택하지 않으면 자신의 길을 정할 수 있지만 실패를 대신 감당할 곳도 없다.
한 번 얻은 권한과 한 번 진 빚은 다음 사건까지 따라온다. 힘과 실적이 선택지를 넓혀도 문제 자체를 지우지는 못한다. 오히려 이름값이 커질수록 조직은 더 무거운 책임과 더 오래 묶어 둘 관계를 요구한다.
세 세력은 같은 사건에서 사람과 기록, 가이딩의 상대를 서로 다른 이름으로 부른다. 보호하겠다는 말이 누구에게 결정권을 줄 것인지는 언제나 별개의 문제다.